레미제라블과 지옥설계도.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한가?

각종 미디어 2012.12.28 17:39
(이 글에는 소설 '지옥설계도'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아주 살짝 포함돼 있습니다. 결말을 안다고 해도 이 소설의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노파심에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복기를 위해 유튜브 동영상을 감상하면서도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이 25주년 콘서트의 마지막 장면-모든 공연이 끝난 뒤 그동안 레미제라블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모두 나와서 주제곡들을 이어가면서 부르는 장면(2시간 25분 언저리부터)-에서 울컥했다. 



레미제라블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이런 것 아닐까. 불쌍한 인생은 앞으로도 불쌍할 것이고 더 나은 세상이라는 게 과연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꿈은 세대에서 세대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어쨌든 내일은 올 것이고 다음 세대가 우리를 또 이을 것이다. 이미 백발노인이 된 초대 출연자부터 혈기왕성한 현재 출연자까지 세대별로 이어가면서 부르는 노래에서 레미제라블의 메시지가 더 함축적으로 전해져 온다.
(여기까지는 페이스북에 썼던 글)

성탄절 연휴 동안 영화 '레미제라블', 책 '지옥설계도'와 함께 했다. 빅토르 위고의 고전 '레미제라블'과 이인화의 신작소설 '지옥설계도'를 하나의 글에 묶는 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같이 보고 읽다 보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잠깐 생각의 단편들을 정리해 본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대해서는 평가가 많이 엇갈리는 것 같다. 스토리는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유명한 뮤지컬을 그대로 옮긴 영화여서 스토리 감상의 측면에서는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 또한 뮤지컬 공연의 생생한 현장음악의 느낌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라는 방식으로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기대를 갖고 보았다. 하지만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뮤지컬 무대와 비슷한 규모의 세트가 실망스러웠다. 특히 프랑스 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바리케이드 장면은 소설의 배경이 된 6월 혁명의 고증을 좀 어겨서라도 스케일을 좀 키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워낙 아름다운 음악들과 원작이 가진 스토리의 무게는 그 정도는 충분히 상쇄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영원한 제국'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인화가 8년 만에 내놓은 '지옥설계도'는 범죄수사라는 기본 스토리에 꿈(최면, 인셉션의 세계)과 상상(정신, 아바타 또는 매트릭스의 세계)를 오가는 판타지 SF물이다. 작가 스스로 '게임문학'이라고 정의내린 것처럼 소설인 동시에 게임(인페르노 나인, MMORPG) 시나리오이며 현실인 동시에 한 판의 게임인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레미제라블과 마찬가지로 지옥설계도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들이 등장하고 불쌍한 민중들의 투쟁기가 스토리의 바탕을 이룬다. 다른 점이 있다면 레미제라블이 프랑스 대혁명기의 실제 역사가 배경이 되었다면 지옥설계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아니 존재할 지도 모르는, 세계에서의 투쟁과 혁명이 서로 다른 세 차원의 세상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지옥설계도의 현실세계-대한민국 대구의 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수사팀장인 김호의 세계-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치열한 바이오 정보전쟁 속에 탄생한 강화인간들(인텔리전스 도핑을 통해 일반인보다 10배의 지능을 갖게 된 인간들)이 미중 양국 첩보기관을 이중으로 속이고 비밀리에 조직한 '공생당'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전지구적인 차원의 혁명을 꿈꾼다.

지옥설계도의 최면세계(인페르노 나인)-공생당 의장이자 2호 강화인간인 이유진이 설계한 세계-에서는 동방군령의 폭압에 저항하는 창생교 반란군이 천사들(현실세계 강화인간들의 암호명이자 인페르노 나인의 민중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도움으로 동방군령과 맞서 싸운다.

지옥설계도의 정신세계-이유진이 남아 있는 강화인간들에게 인페르노 나인의 비밀을 풀 수 있도록 남겨 놓은 소설 속 소설 '갑오징어 먹물 리조토'의 세계, 일종의 아바타의 세계-에서는 공생당이나 창생교 같은 혁명조직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현실세계에 여자친구를 남겨 두고 정신세계로 떠난 주인공이 스스로 잃어버린 것들로 인한 상실감과 싸운다. 

누가 이겼을까? 인페르노 나인에서는 이유진의 친구이자 강화인간인 준경이 결국 동방군령을 물리치고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휴먼 엘프 드워프 호빗 연합군이 결국 모르도르를 물리치듯이) 평화로운 왕국을 건설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레미제라블의 혁명이 실패했듯이, 현실세계에서의 공생당은 혁명에 실패하고 강화인간(천사)들은 소탕된다. 

무엇이 남았을까?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마리우스와 코제트를 살렸듯이 김호는 준경과 그의 딸 연경을 살렸다. 다시 바톤은 다음 세대로 넘겨졌다. 
 
언젠가는 이길 수 있을까? 지옥설계도의 세계관을 빌리자면 세상은 유도자와 형성자, 변신자와 처단자로 이루어진 세계다. 우리는 이 세상의 유도자인 신이 만든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형성한다. 그 세계는 변신자들의 등장으로 파장이 고조되기도 하지만 처단자의 등장으로 스스로 소멸하기도 하는 세계다. 이 세계에서 이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현실일까? 꿈일까?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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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angmangdy.tistory.com 망망디 2014.02.13 08:46 신고 Modify/Delete Reply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는 점에서 레미제라블과 지옥설계도를 병치해 생각하신 점이 신선합니다. 이인화의 책을 나중에 구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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