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부 없어지면 나라가 망하기라도 합니까

about Media 2008/01/13 14:24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 가운데 정보통신부 폐지 방안에 대한 반대여론이 IT업계종사자(특히 통신패밀리들)를 중심으로 들끓고 있는 모양이다. 

신문에서 떠드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는데 블로고스피어에서도 정보통신부 폐지에 반대하는 여론 일색인 것이 무척 놀랍다.

거의 대부분의 사회생활을 정보통신부의 우산 아래 지내 온 나로선 세금낭비하는 현장을 너무나도 많이 봐 왔고, 그래서 틈만 나면 정통부 없애야 한다는 얘기를 주변해 해 온 터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정부조직이라든가 사회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바탕에 두고 한 얘기는 아니다. 더우기 정통부 외의 다른 정부조직의 실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딱히 폐지론에 대한 논거를 치밀하게 댈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사실 별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늘 보게 되는 IT매체들이 연일 떠들어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통부 폐지 반대론을 훑어보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한 줄 적는다.

'IT분야 정부조직 개편방향에 대한 정통부 입장'이라는 정통부 직원일동 명의의 성명서는 "놀랍도록 빠른 통신방송 환경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여 정책수요자에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IT생태계 전체를 일관되게 관장하는 전문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정통부다운 생각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 주장이 옳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지난 20여년간 IT생태계 전체를 관장해 온 정통부가 제대로 한 일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지만, 나는 저 IT생태계 전체를 일관되게 관장한다는 표현 자체가 무척 싫다. 싫은 정도가 아니라 저런 마인드가 오히려 정보통신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통신부는 그동안 IT생태계, 다른 말로 IT먹이사슬의 최상층부에 앉아서 먹이사슬 전체를 관장해 온 것이 사실이다. IT산업만큼 정부의존적인 곳도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자그마한 벤처기업까지 정통부의 우산아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통부는 국가 공공재산인 주파수 장사를 통해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자금을 바탕으로 위로는 KT부터 아래로는 벤처기업에 이르기까지 한 손에 당근을, 한 손에 채찍을 들고 '관장'해 오지 않았는가.

더우기 이놈의 IT먹이사슬은 '산업계'안에서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IT산업은 산-학-연-관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엮여진 그물망으로 구성돼 있어서, IT산업 먹이사슬의 최상층부에 앉아 있는 정통부는 산학연관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무소불위의 행정능력을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한국이 IT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고 정통부는 주장한다. TDX부터 ISDN, CDMA를 지나 WiBro, DMB, BCN, RFID/USN에 이르기까지....

90년대까지는 그랬을 지 모르겠다. 척박한 환경에서 IT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이 일심동체가 되어 개발이면 개발, 표준이면 표준, 수출이면 수출에 한 목소리로 총력을 기울여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시기는 지났다.
지난 20여년간 '통신패밀리'로 지칭돼 온 정통부 시스템은 이미 2001년(3G주파수장사완료시점)에 수명을 다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에서도 통합 전산부서와 CIO중심의 IT관리가 더 중요한 시기가 있고, 현업중심의 일관된(IT를 포함한) 사업조직이 더 중요한 시기가 있다. 정부정책도 이제 IT산업 그 자체의 독립적인 수직계열화보다 IT와 연관산업과의 시너지가 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이 문제를 갖고 논쟁을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중요하게 지적돼야 할 것은 지난 5년동안 정통부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5년 동안 정통부는 IT839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인프라 확충기 이후의 IT통합부처로서의 변신에 노력을 기울인 걸로 안다. 그러나 애는 썼지만 별 성과가 없었던 것은 이제 TDX나 CDMA개발하던 시대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국내시장은 포화상태에 도달했고 글로벌 시장환경은 통신패밀리의 해체를 가속화시킨 마당에 20여년 동안 이어져 온 산학연관 시스템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이제 정통부는 일을 하면 할 수록 예산낭비와 부처간 밥그릇 싸움만 초래할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통신방송'서비스'의 규제와 관련된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 특히 산업육성과 관련한 부분은 각 수요부처로 나누는 게 옳다. 짜장면 영업부서에서 짜장면 판매를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놓고 이에 따른 배달관리시스템 개발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개발부서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면서 우선 식당관리시스템 표준화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라고 하면, 짜장면 영업부서가 참고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IT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통부 폐지는 물론, 정통부를 정점으로 구성돼 있는 IT산업 생태계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 기왕 손댈거면 정부조직만 손대지 말고 정보통신진흥기금도 뜯어고치고 학회든 협회든 무허가 대학교든 다 백지상태에서 다시 만들기 바란다.


인수위도 정부조직개편의 목적을 분명히 하기 바란다. 몇부 몇청 하는 숫자놀음으로 작은정부가 되는 게 아니다. 부처 없애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IT산업의 성장발판이 될 생태계를 개편하는 것이다. 지금은 한국 IT산업 생태계의 새 틀을 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조직만 바뀌고 개발도상국 시대의 산학연관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정부조직개편은 생색내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끝으로 요즘 정통부 폐지반대의 선봉에 서고 있는 전자신문에도 한 마디.

‘IT 융합시대, 미래로 가는 길’을 향해 힘차게 나섰던 정보통신부와 관련 산업계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정통부 폐지라는 벽 앞에 아예 멈춰설 지경이다. 작게는 지난 3년여 동안 진통 끝에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에서 윤곽을 잡아가던 통신·방송 정책기능 일원화 방안이 백지가 될 위기다. 크게는 21세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새로운 근간인 IT를 방치해 첨단 지식정보사회에서 퇴보할 처지다.
                 
          - 전자신문
'[IT융합시대, 전문 행정기구 필요하다](하)새 시대, 미래로 가는 길'에서 인용

이게 기사냐. 성명서냐. 아니면 전자신문도 통신패밀리라고 자백하는 거냐.
전자신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전자신문도 구태를 벗어나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추가)글을 쓰고 나서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그 사이에 정통부 폐지를 찬성하는 쪽의 글도 올라와 있어 링크를 추가합니다.
정보통신부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정부조직개편을 바라보며 떠올리는 언론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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