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의 장례식

일상 잡담 2009.05.16 14:33
밤길을 꼬박 달려 도착한 처제의 빈소에는 상주인 큰조카와 동서, 막내 처남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울산까지 내려오는 동안 내내 울먹이던 아내는 영정앞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그치지 못한다.

유난스러울만큼 우애가 돈독한 자매들이어서 나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아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었는데, 장례를 치르고 올라온 지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걱정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나도 허탈함과 피곤함이 겹쳐 이틀동안 맥을 못추고 있지만 아내는 거의 잘 먹지도 못하고 온몸의 기가 다 빠져나간 듯이 허우적대고 있다.

5남매의 맏이인 아내는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교사였던 장모님은 5남매를 키우기 위해 보험영업을 시작했고 아내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을 함께 키웠다. 때로는 누나, 언니로 때로는 엄마, 아빠 노릇을 하며 맏딸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처남, 처제들은 누구보다 아내를 따르고 변변치 못한 나를 늘 집안의 어른으로 대접해 준다.

지난 몇 년동안 아내는 정말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처절하게 처제를 지켜왔다. 회사와 병원을 매일 오가며 온갖 병수발과 밤샘간호를 하고 주말이면 처제를 차에 태우고 방방곡곡에 희망을 찾으러 다녔다. 처제에게는 언니라기보다는 정말 엄마같은 존재였다. 보는 사람들마다 '내게도 저런 언니가 있었으면...'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아내는 처제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장례식장이 한산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처제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조카들의 친구 엄마들,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장례식장에는 처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보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정도로 울다가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우는 친구들도 있었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부의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금액의 봉투가 쌓였다. 모두가 처제가 살아 있을 동안에 베풀었던 덕과 남아 있는 두 아이들이 그만큼 안타깝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제가 활동하던 네이버 카페에는 부고가 공지로 걸리고 수 천 개의 댓글이 처제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많이 베풀며 살았던 그녀의 생전모습이 그대로 장례식에 투영되고 있었다.

오늘은 나와 아내의 결혼기념일이었다. 하지만 잠깐만 한 눈을 팔고 있으면 아내는 어느 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다. 달래고 추스려 거실로 끌고 나오면 이번에는 처제가 생전에 썼던 카페 글들을 읽으면서 또 훌쩍거리고 있다. 프린터 출력하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그걸 또 전부 프린트하고 있다. 빨리 잊어버려야 할텐데 카페에서는 처제의 글들을 영구보존한다고 공지까지 해 놓았으니 큰일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직업병이 도져서 굳이 출력하지 말고 블로그 만들어서 스크랩으로 옮겨놓으라는 소리나 하고 있다.

잊어버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또 살아야 한다.

"여보,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 너무 슬퍼하지 말고 힘을 내자고. 처제는 하늘나라가서 이제는 아프지 않잖아. 이제 당신 어깨의 짐도 그만 내려놓자. 응?"

'일상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그 쉽니다  (0) 2009.05.25
처제의 장례식  (1) 2009.05.16
부고  (11) 2009.05.13
꿈을 주든지, 돈을 주든지  (11) 2009.05.07
Trackbacks 0 : Comments 1
  1. Favicon of http://minoci.net 민노씨 2009.05.19 10:18 Modify/Delete Reply

    그 모습들이 선하게 그려지네요...
    모쪼록 오래 오래 기억하되, 필로스님께서도 아내분께서 일상의 평온을 어서 어서 되찾게 되시길 바라봅니다...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