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뱅크 상장폐지.. 누가 벤처를 타락시켰나..

각종 미디어 2009. 9. 2. 13:31
한 때 인터넷(주)의 대명사였던 골드뱅크(블루멈)이 4일 상장폐지된다고 한다는 소식을 그만의 링블로그에서 알게 됐다.

나 또한 인터넷 또는 벤처거품기의 소용돌이 속에 젊은 날을 허비했던 사람중의 하나로, 골드뱅크 상장폐지 소식은 여러가지 생각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게 거품이었든 환상이었든 구조적 모순이었든 이제 별로 중요치 않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젊었고, 인터넷에 미래가 보였었다는 것. 그리고 그 숱한 열정들의 대부분은 한 여름밤의 꿈으로 사라져 갔을 지 모르지만, 그 꿈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아래는 2000년 11월 19일에 inews24.com에 썼던 글이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다소 거칠고 자기변호에다, 감정이 지나치게 개입돼 있는 점도 있지만,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옮겨와 본다.


누가 벤처를 타락하게 하는가 (2000.11.19. inews24)

고급승용차, 룸살롱, 정치인과의 결탁, 머니게임….

벤처나 벤처기업가에 대한 나쁜 시각을 표현할 때 우리는 흔히 이런 단어들을 거론하곤 한다. 해당 기업의 경영상황과는 다소 무관할 수도 있지만 이런 단어들을 反벤처 구호에 동원하는 이유를 필자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한다.

무 엇보다 재벌이든 중소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 간에 이런 단어들과 어울리는 게 좋을 리는 없지만 기술과 열정이 가장 큰 무기라야 할 벤처기업에게는 특히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런 벤처기업가들이 건강한 벤처의 물을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런 단어들을 자주 입에 올리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기업의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특정 기업을 비난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 이런 종류의 단어들은 매우 훌륭한 구실을 하며 벤처기업에게는 파급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에 희망과 미래를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벤처마저..'라는 분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대표이사가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밤마다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린다거나 정치인과 결탁해 관계요로에 로비를 하고 기술개발이나 경영은 뒷전인채 머니게임에만 치중한다면 비난받아야 마땅하고 그런 기업은 당연히 퇴출감이라는 데 이견을 달 수는 없다.

하지만 필자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논리에서 나머지 한 쪽 손바닥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벤 처기업의 탈선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벤처기업이 테헤란로에 많은 이유는 이 일대에 좋은 룸살롱이 많기 때문이라거나 지난해 벤처기업으로 쓸려 들어간 수조원의 자금이 대부분 술과 여자에게 탕진됐다는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하는 분들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벤처기업인을 룸살롱에 불러 내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로 하여금 직원 몇 명의 한 달치 급여를 줄 수도 있는 돈을 하루밤 술값으로 날려버리게 만드는 이 사회의 독버섯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장황하게 이야기 할 것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벤처기업의 상징처럼 떠오른 테헤란로에는 벤처기업들 못지않게 벤처를 갉아 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이 약하고 어린 벤처를 타락시키고 한국의 미래를 좀먹고 있다.

이 기생충들은 재벌경제체제의 부산물에 다름 아니다. 정경유착, 권언유착 등으로 상징되는 재벌경제체제가 허물어지자 더이상 뜯어먹을 게 없게 된 기생충들이 물좋다는 강남으로 자리를 옮겨 벤처를 대상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재벌경제체제에서 잔 뼈가 굵은 사기꾼들은 이제 갓 세상에 나온 햇병아리들을 상대로 오히려 더욱 번성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벤처기업,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벤처기업 경영자를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며’ 오늘도 당당하게 테헤란로를 활개치며 다닌다.

벤 처를 ‘돕고’ 있는 테헤란로 브로커들의 유형을 보자. 이들은 보도자료를 어떻게 쓰는지조차 모르는 벤처기업들을 신문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며 때로는 나오지 않도록 ‘도와’ 준다. 돈을 어떻게 빌려 쓰는지, 코스닥에는 어떻게 올라가는지 ‘도와’주며 자금이 필요할 때 ‘큰 손’과 연결이 되도록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권력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들도 부지기수다.

쉽게 말해 ‘언론 브로커’, ‘자금 브로커’, ‘권력 브로커’ 들이다.

물 론 모든 벤처기업인이 다 고급승용차 타고 룸살롱 다니는 게 아닌 것처럼, 이들 중에서도 진정으로 벤처기업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 또 브로커라는 말을 나쁜 뜻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중개업은 엄연히 정당한 사업이다. 일부 몰지각한 '쁘로커'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다음은 필자가 지어낸 이야기다.

A사는 사장을 포함해 직원 6명이 변두리의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기술개발만 하던 전형적인 벤처기업이었다. 오로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A 사 B사장은 어느 날 우연히 동창회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다음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희 회사를 기사화하려는 데 어떻겠느냐고. 아직 개발이 완료되려면 시간이 더 걸리는 일이니 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기자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오늘 넘겨야 하는 특집기사가 있는데 대상을 못 찾았으니 이해해 달라는 거였다. 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신문에 기사가 대문짝 만하게 실리자마자 사장은 일할 시간을 찾을 수가 없어졌다. 온갖 신문사에서 전화가 연이어 왔다. 이름을 들어본 신문도 있지만 처음 들어보는 신문사가 태반이었다. 대한민국에 왠 신문사가 그렇게 많은지 그때까지는 몰랐다. 거절하는 것도 한 두 번이었다. 인터뷰를 거절하면 협박까지 해댔다. 그러는 와중에 안보던 신문도 여러부씩 보게 돼고 생전 보지도 못했던 잡지들도 수십권씩 구석에 쌓아두게 됐다.

그 다음 차례는 돈 가진 사람들이었다. 무슨무슨 투자회사니 벤처캐피탈이니 엔젤이니 하는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다. 사업계획서조차 만들어 놓은 게 없었으나 달라는 자료는 많았다. 아직 돈은 필요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 사람들은 도무지 알아듣지 못했다. 돈 대겠다는 사람 있을 때가 행복한 시절인 줄 알라며 오히려 훈계를 했다.

“B사장, 아직 젊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라서 그럴 걸세. 재벌들이 어떻게 재벌이 됐는지 아나.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서 사업을 하겠나. 한 번 시작했으면 크게 한 번 성공해 봐야 할 것 아닌가. 기술만 있다고 사업이 되는 게 아냐. 잘 모르겠거던 나한테 물어봐. 내가 도와줄게. 나만 믿으라구.”

B사장은 뭔가 잘못 돼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끊어버릴 수는 없었다. 손해볼 것은 없다는 생각도 한 몫 했다. 게다가 잘못 보여서 좋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B사장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됐고 기업도 크게 키우게 됐다.

B사장과 직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졌다. 당초 계획했던 기술개발은 진척이 없고 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동안 언론에, 증권시장에 발표한 사업계획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걸 A사 직원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업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호랑이 등에 올라 탄 격이었다.

B사장은 불과 몇 달 만에 밤이면 밤마다 룸살롱에서 그동안 ‘도와’ 준 언론 브로커, 자금 브로커, 권력 브로커들에게 진 ‘빚’을 갚으며 시간과 돈과 체력을 낭비하는 게 주업이 돼 버렸다. 룸살롱에서 시간을 낭비하면 할수록 사업은 더욱 힘들어지기만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끊을 수도 없다. 상황이 안좋아 질수록 빚은 또다른 빚을 잉태하고 ‘도움’의 크기는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소프트웨어 벤처기업들이 하나 둘씩 테헤란로에 등장할 때부터 2000년 닷컴 벤처가 창궐할 때까지 필자는 기자로 또는 업자로 다양한 벤처기업 CEO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사 람들은 벤처기업 경영자들이 모든 면에서 서툴다고 말한다. 재벌경제체제 하에서 구축된 사기 산업 종사자들의 시각에서보면 벤처기업은 서투르기 짝이 없을 것이다. 하긴 그렇기 때문에 벤처기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직 젊은 한국의 벤처 CEO들이 서투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이라는 나라는 벤처기업 CEO들에게 기술개발에서부터 홍보담당, 자금담당, 대관업무담당까지 혼자 맡아서 해결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런 분야에서 손바닥을 마주쳐야 할 반대쪽 손바닥들은 대부분 재벌경제체제 하에서 잔뼈가 굵은 노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글의 앞 부분에서 나머지 한 쪽 손바닥을 이야기했으나 결국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모든 책임은 기업에 돌아간다. 브로커들에게는 책임이 없다. 그것이 현실이며 그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잘 살아온 이유다.

A사 B사장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끊어야 한다고.
우리가 벤처에서 한국의 희망을 보는 이유는 기술과 열정 못지 않게 기생충을 박멸할 수 있는 젊은 정신까지 당신들이 가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Trackbacks 1 : Comments 2
  1. Favicon of http://http://dot501.textcube.com ZMania 2009.09.02 16:44 Modify/Delete Reply

    참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벤처한다는 분들께 최종 목적지가 어디 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코스닥상장이라고 하던 생각도 나고요...
    사실 모든 분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회사 만들어 상장한다하고 상장되면 배수 높여서 회사 잘 팔면 된다고 하는 분들이 꽤 있죠.. 그리고 위 포스트 처럼 거기에 붙는 쁘로커들...

    물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인맥없이 어떤일을 하기 힘든건 사실 입니다.
    중계를 하는 사람들(쁘로커)들이 있는 이유는 중계가 가능하기 때문 아닐까요?
    얼마전 게임 산업 진흥원에서 추진하는 과제에 신청서를 내면서도 재일먼저 드는 생각이 "이거 이미 짜논 판에 들러리 스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제나 기회주의자가 아닌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날이 올런지......

    • Favicon of https://philomedia.tistory.com PhiloMedia 2009.09.03 14:43 신고 Modify/Delete

      반갑습니다.
      그래도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짜놓은 판이라고 생각했던 입찰에서도 떨어져 본 경험이 있어서요^^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건승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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