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와 저널리즘의 미래

각종 미디어 2011.06.20 18:20


위키리크스(21세기북스)는 참 재미있는 책이다.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주제와 저자(의 직업) 사이의 내적 갈등 구조도 재미있다. 후자의 재미는 물론 내가 그 갈등구조에 끼여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위키리크스는 제보자의 익명성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보장하고, 제보 내용을 원본수정없이 공개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지난 한 해 동안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웹사이트다.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사용자(내부고발자)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외부유출이 금지된 기밀자료들을 인터넷에 폭로하고 있는데,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나 미 국무부의 외교문서 같은 핵폭탄급 폭로를 연달아 터뜨림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위키리크스 자체에 대한 내용(핵심인물인 줄리언 어산지의 개인사에서부터 그동안의 활동내용, 주요 폭로사건 요지, 위키리크스 내부의 갈등 등)이며 다른 하나는 위키리크스와 저널리즘의 관계와 관련한 내용이다. 이 둘이 스토리상으로 구분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의 폭로과정에 참여한 언론사들과의 공동작업 뒷이야기, 위키리크스를 바라보는 서구 언론들의 다양한 시각, 슈피겔 기자인 저자의 감회 등이 책의 메인스토리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 책을 읽는 내내 '저널리즘의 미래'라는 화두를 곱씹게 했다. 

위키리크스는 태생적으로 전통적 저널리즘에 대한 반감(아니면 최소한 무시)를 바닥에 깔고 있다. 저널리즘은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진실을 보도한다고 해도 제한된, 가공된, 정리된, 축약된, 필터링된 내용만을 알려준다는, 이제는 광범위하게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안티 저널리즘의 기반 위에 서 있다. 진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 외의 다른 도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인식.

하지만 위키리크스 역시 특종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이런 자료를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극적으로 표현하여 대중들에게 빠르게 전파하는 데 익숙한 전통적 저널리즘(슈피겔(독), 가디언(영), 뉴욕타임즈(미))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으며 이 책 역시 그 과정에 참여한 기자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은 저널리즘 종사자들에게 한 가닥 위안이 될 지 모르겠다. 더우기 서로 다른 3개국의 언론사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밀을 유지하면서 완벽한 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내는 과정을 보면 (저자가 참여 당사자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현시대에서도 저널리즘의 필요성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사례로까지 보일 지경이다.

기존의 언론제도와 이런 식으로 밀접하게 얽히는 것은 위키리크스가 본래 목표한 바는 아니었다. 애당초 어산지가 추구한 것은 인터넷을 통한 '크라우드소싱'이었다....그런데 이런 목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그는 팔루자 전투에 대한 비밀 보고서를 예로 들면서 위키리크스가 '수천 명'의 블로거들에게 자료를 보냈지만 이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위키리크스 자신과 기성 매체들의 전문기자들뿐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오려붙이기'로 만족했습니다." 
- 위키리크스 362쪽

슈피겔의 베테랑 기자인 저자 역시 책의 곳곳에서 현재 저널리즘이 처한 위기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은 저널리즘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모양이다.
 

위키리크스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점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채널들의 우월함에 대해 지나치게 후한 점수를 매기는 다소 들뜬 분위기에 관한 것이다. 사실 정보들을 위한 접점으로서의 역할은 애당초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역할은 기성 매체들의 형식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플랫폼들과 비교해서도 기성 매체들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정리하고 다양한 주장들을 위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등 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왔다. 또 정보 출처와 관련해서도 아무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위키리크스가 자신들의 특징적 장점으로 선전하는 안전한 정보원 보호는, 가령 슈피겔은 1947년에 처음 설립될 때부터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다.  ...(중략)...  결국 중요한 것은 인터넷과 대중매체의 대립이 아니라 정보의 내용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문제다. 위키리크스는 정보원들이 기존의 매체에서는 더 이상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서도 정보전달자로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위키리크스 374쪽

전세계적으로 저널리즘은 사양산업으로 치부되고 있으나 아직 저널리즘의 유용성이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가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는 유수의 언론사 중 하나인 슈피겔 기자조차도 저널리즘의 미래에 확신을 가지는 모습은 아니다. 위키리크스가 어산지의 개인문제든, 미국 정부의 공격에 의한 것이든, 설사 실패한다 하더라도 제2, 제3의 위키리크스는 계속 나올 것이다. 또한 이에 영감을 받은 또다른 형태의 대안 저널리즘 실험은 세계 곳곳에서 탄생할 것이 분명하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다면, 저널리즘의 마지막 비빌 언덕은 인간의 나태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이(한국에서는 네이버 뉴스캐스트가) 던져주는 뉴스를 몇 개 읽고는 알아야 할 것들은 다 안 것으로 생각하고 만다. 기본적으로 언론은 인간의 게으름을 먹고 산다. 하지만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도 자신의 필요가 발생하면 저널리즘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통해서 얼마든지 정보를 구할 수도, 퍼트릴 수도 있는 세상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저널리즘이 사양산업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특히 가디언, 뉴욕타임즈, 슈피겔 같은 매체를 기준으로 저널리즘 전반을 논하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거의 '학문적 고찰'의 수준이다. 최근 트루맛쇼 같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정도로 매스미디어를 통해서는 아예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른 판국에 '저널리즘의 미래' 따위는 사치스런 고민일 수 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는 한국 언론의 형편무인지경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이 책은 이 밖에도 많은 화두를 포함하고 있다.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의 문제, 표현의 자유는 신성불가침의 권리인가, 위키리크스의 당파성, 객관적 중립은 가능한가, 소셜미디어(그 중에서도 블로그)가 전통적 저널리즘을 대체할 수 있는가, 아마존과 페이팔 같은 민간기업의 위키리크스 계정중지는 합당한가...위키리크스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은 capcold님이 이미 잘 정리한 바 있다.

...

이 책은 풍림화산님이 선물로 주신 책이다. 벌써 두 번 째 책 선물인데 그나마 허접한 독후감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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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지식갤러리) (풍림화산)
Trackbacks 2 : Comments 6
  1. Favicon of http://minoci.net 민노씨 2011.06.20 18:42 Modify/Delete Reply

    "애당초 어산지가 추구한 것은 인터넷을 통한 '크라우드소싱'이었다....그런데 이런 목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그는 팔루자 전투에 대한 비밀 보고서를 예로 들면서 위키리크스가 '수천 명'의 블로거들에게 자료를 보냈지만 이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위키리크스 자신과 기성 매체들의 전문기자들뿐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오려붙이기'로 만족했습니다."

    위 구절은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네요.
    만약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이슈로 블로거들(수천은 안되겠지만 수백에게라도, 아니 수십명에라도)에게 전했다면 얼마나 그 테마를 고심하고 자기 관점으로 해석해 블로깅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한편에선 그런 적이 전혀 없었던(!) 한국 블로그계의 위상에 대해 착잡함도 생깁니다.

    말미에 말씀해주신 "인간의 나태함"이 "저널리즘이 비빌 언덕"이라고 말씀해주신 부분은 아주 인상적인데, 한편 명확하게 의미가 잡히지 않습니다. 인간은 나태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다양한 정보 출처들을 통해 주체적으로 정보를 수용하고, 재가공하지 못한 채 저널리즘에서 던져주는 정돈된 형태의 정보들을 받아먹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취지신가요? (아마도 그런 취지신 것 같기는 한데요)

    • Favicon of https://philomedia.tistory.com PhiloMedia 2011.06.20 18:57 신고 Modify/Delete

      인용하신 문장은 저도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기업의 홍보자료이긴 하지만 초창기에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죠. '보도자료'라는 것이 언론과 뉴스소스 제공자 사이에 수십년 동안 축적된 관행의 산물인데 이를 블로거들에게 제공할 때 느끼는 서로간의 어색함이 참 극복하기 힘들더군요. 물론 단순히 '보도자료'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블로거들은 타인으로부터 자료를 제공받는 것이 어색하기 이를 데 없죠.(광고료를 지불하고 블로그에 홍보물을 싣는 것은 또다른 얘기고요) 요즘은 이것인 SMNR(소셜미디어뉴스릴리즈)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무언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감이 있죠.

      나태함 운운은, 늘 그렇지만, 순전히 제 느낌을 풀어놓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학문적으로 근거를 갖고 설명할 능력은 없고요^^ 대체로 해석하신 취지가 맞습니다.

  2. 아거 2011.06.21 00:46 Modify/Delete Reply

    좋은 책 리뷰해 주셨고, 현 시대에 던지는 함의도 잘 정리해 주셨네요.
    민노씨의 코멘트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philomedia.tistory.com PhiloMedia 2011.06.22 20:08 신고 Modify/Delete

      선수가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 어줍잖게 해설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항상 거시기합니다. 너나 잘해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요;;

  3. 2011.06.27 11:23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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