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전시회를 통합한다고 잘 될까요?

각종 미디어 2007. 10. 20. 02:31
킬크로그님의 글 '한국전자산업대전 통합개최 진통'
에 트랙백용으로 쓰는 글입니다.

이 글은 킬크로그님의 글에 이견이 있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제가 생각해 오던 국내 IT전시회, 특히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전시회 통폐합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함으로써 킬크로그님의 글에 보충하고 싶은 마음에서 쓰는 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킬크로그님이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국내 IT전시회의 문제점에 대해 99%동의합니다. 사실 킬크로그님 뿐만 아니라 IT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분들의 문제의식은 거의 동일할 겁니다.

다만 그러한 문제가 파생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정부 측에서 이야기하는 '통합론', 다시 말해 현재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들이 유사전시회의 통합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몇 가지 첨언하고자 합니다.

왜냐 하면 단순히 전시회를 합친다고 해서 기존의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 각의 전시회를 개최해 온 주체들이 한 곳에 모여서 머리를 맞댄다고 해서 안오던 바이어가 갑자기 밀려들어오게 할 수 있는 묘안이 생길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1+1+1=3이 되기는 커녕 1+1+1=1이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사실 1+1+1=5 또는 6쯤 된다면 모를까 1+1+1=3만 가지고서도 통합의 명분은 불충분합니다만)

 IT전시회 통합론의 명분은 허울뿐인 구호에 불과합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전자산업통합대전'은 한국전자전(KES), 국제반도체디스플레이대전(SEDEX), 국제정보디스플레이산업 전시회 및 학술대회(IMID) 등 산자부 계열 전자전시회를 통합하자는 이야기입니다. 통합작업의 진행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합니다만 내년에는 통합이 아니라 동시개최(서로 다른 전시회이지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나란히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글을 써 놓고 검색해 보니 통합은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떴네요. 글의 목적이 특정 전시회의 통합 여부 때문에 쓴 것은 아니니 그냥 포스팅하겠습니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5584&yy=2007

또한 위에서 열거한 산자부 계열 3대 IT전시회의 통합외에도 정통부 계열의 IT전시회(SEK, KIECO, IT Korea, ExpoComm Wireless, IT테크노마트, ITRC포럼, 소프트엑스포, 차세대PC산업전시회 등등)도 내년부터 모두 통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20년 이상 한국 IT전시회를 대표해 온 SEK과 KIECO도 내년부터는 볼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통합론의 대의 명분은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전시회 하나 만들어보자', 'IT산업은 세계적인 강국인데 왜 IT전시회는 이 모양이냐'하는 목소리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동의하는 멋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전시회를 물리적으로 합친다고 해서 글로벌 전시회가 생기는 것일까요?

전시회 통합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제 기억으로 2003년경부터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처음 나오게 된 배경이 위와 같은 '명분'때문이 아닌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딱 잘라 말해서 2002년부터 IT전시회의 성장곡선이 꺾이는 모습이 확연해졌기 때문에 각 주최사들마다 살 길을 찾아서 M&A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IT전시회는 2003년부터 급격한 사양산업화 조짐을 보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 아시다시피 오프라인 전시회의 니즈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컴덱스 쇼마저 2003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래프가 꺽이는 모습이 확연해지면 과감하게 철수해 버리더군요. (이후 지금까지 대규모의 IT전시회는 업종별, 영역별 소규모 컨퍼런스 중심으로 쪼개져 왔고 그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부터는 독일에서 열리는 세빗 전시회조차 규모가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오히려 2002년 이후 IT관련 전시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한 거죠. 바로 정부가 위에서 말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앞다투어 새로운 전시회를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소프트엑스포가 그렇게 탄생했고 IT테크노파크, G스타, 스마트홈네트워크전시회 등 유사 전시회가 계속 생겨났습니다.  진대제씨가 정통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만든 IT839정책에 따라 테마별로 유관단체, 협회 등 정부산하기관도 계속 늘어나고 산하기관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전시회도 하나씩 늘어났습니다.

결국 어떻게 됐겠습니까. 이미 IT전시회는 참가하려는 기업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 즉 수요는 줄어들고 있는데 공급(그것도 정부에서 참가비를 지원해 주는 공짜 참가 전시회)가 계속 늘어났습니다. 결국 전부 다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겁니다. IT전시회는 이제 기업이 필요해서 참가하는 비즈니스 행사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나가는 행사가 되버린지 오래입니다.

물론 정부의 의도는 좋은 명분에서 출발했다고 믿어 줍시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IT전시산업의 사양화를 더욱 가속화한 결과가 됐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또다시 전시회를 모두 통합해서 세계적인 전시회를 만들어보자고 합니다. 시장 상황은 통합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기 때문에 민간 전시업체들도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통합에 동의한 모양입니다만 통합한 뒤의 비전제시는 아무도 못하고 있습니다.

통합해서 세계적인 전시회를 만들 수 있다면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해당 전시업계 종사자들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시회도 '사업'이기 때문에 '수요'가 사라진 사업을 성공시킬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이제는 주인없는 사업이 되었습니다. 정부 공무원들이 전시사업을 육성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시'사업'이 아니라 실적과시용 전시'행사'는 잘 치를 수 있겠지요. 기업들은 동원될 것이고 컨퍼런스 관람객도 동원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국민의 혈세가 쓸 데 없는 일에 낭비되는 셈입니다.

전시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시회 참가기업들이 기꺼이 비용과 노력을 지불해서 전시회에 참고하고 싶은 '서비스'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주최자는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서 참가업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서 경쟁력이 비롯됩니다. 참가자에게 바이어가 필요한 전시회라면 바이어가 오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고 소비자가 필요한 전시회라면 소비자들이 전시장으로 오게 하는 마케팅방법을 찾기 위해 밤을 새울 것입니다.

그러나 통합전시회에는 그런 고민의 주체가 없습니다. 통합 파트너들은 이제 일정지분을 갖게 되겠지만 일하는 시늉만 낼 것이 뻔합니다. 일은 적게 하고 수익은 많이 챙기려는 잔머리들만 굴리게 되겠지요.  시장이 사라졌는데 이제와서 무슨 수로 사업을 키운단 말입니까.

IT전시회 통합의 최대 수혜자는 IT대기업들입니다.
더 좁혀서 말하면 삼성전자, LG전자, KT, SK텔레콤입니다. 가장 큰 수혜는 삼성전자가 받을 것입니다. 이제 1년에 한 번만 생색내면 크게 시달릴 일이 없어질 테니까요.  산자부 계열  전시회 통합논의의 주축인 한국전자산업진흥회의 회장과 정통부 계열 전시회 통합논의의 주축인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의 회장이 모두 삼성전자 사장님들인 건 우연의 일치일까요?

전시회를 통합해서 글로벌 전시회로 키우자는 건 대외용 멘트일 뿐입니다. 종합IT전시회는 맛이 갔다는 건 관련자들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어차피 안나갈수 없는 전시회라면 참가횟수라도 줄여서 예산이나 절감하고 싶을 겁니다. 전시회를 통합해서 2,3년 쯤 운영하다가 '도저히 비전이 없으니 그만 폐지하자'고 할 게 뻔해 보입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시장원리에 따르지 않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가져올 세금낭비와 부작용이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제발 망할 사업은 망하게 내버려 두시고 세금 좀 헛되게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버려 두면 경쟁력 있는 전시주최자가 운영하는 전시회는 알아서 잘 될 것이고 망할 전시회는 망하는 게 당연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IMID에 대해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쓸 데 없는 참견일지 모르나 위에서 인용한 매일신문 기사를 보니 IMID도 언급해야 할 것 같아서 추가합니다.

전시회를 정부가 합치라 마라 하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이 글의 주목적이었습니다만, "지자체가 유치해 키워 온 국제행사를 정부가 빼앗아가려고 한다"는 대구시의 주장 또한 우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IMID도 (여타 국내 전시회들처럼) '국제'라는 단어를 쓰고 있긴 하지만 '국제행사를 유치했다'고 이야기할 때 일반 사람들이 흔히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의 국제행사는 아닙니다. IMID는 '한국'디스플레이학회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내행사입니다. 물론 해외참가기업들도 있겠지요. 이 부분을 굳이 지적하는 것은 지자체가 어렵게 유치한 '국제행사'를 정부가 통폐합하려한다는 주장은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IMID는 한국디스플레이학회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의 '수익사업'입니다. 물론 한국디스플레이학회가 일년에 한 번 개최하는 연례 학술대회를 수익사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결례일 지도 모르지만 행사개최로 얻어지는 수익금으로 행사개최비는 물론 협회(학회) 운영비의 상당부분까지 충당하고 있는 알짜배기 '사업'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협회나 학회가 아무리 비영리단체라고 하지만 모든 사업에는 수익이 나야 합니다.

또한 IMID가 계속 대구에서만 열린 것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2005년에 IMID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습니다. 서울 개최를 요구하는 전시참가업체들의 목소리가 대구 개최를 원하는 목소리보다 컸기 때문입니다. 전시주최자가 전시참가업체들의 요구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수익은 참가업체로부터 나오니까요.

하지만 서울 개최의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대구에서 개최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익(행사장 임차료만 해도 수억원의 차익이 발생합니다)을 능가할 만큼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6년부터 다시 대구로 내려간 겁니다. 다른 행사들과 비교하면 서울개최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만 그것이 IMID라는 행사의 특성(학술대회 중심의 행사, 구미공단과의 인접성, 협회와 학회의 능력(?) 등을 거론할 수 있겠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비즈니스 전시회'는 '사업'입니다. 대구시가 막대한 지원을 하면서까지 IMID를 지역에 유치하려고 하는 것도 그에 따른 부수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고 주최자가 행사를 대구에서 개최하기로 한 것도 이해타산이 맞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대구에서 하든, 서울에서 하든, 다른 사업과 통폐합을 하든 사업자(전시주최자)가 알아서 판단할 몫이라는 거죠.  또 다시 반복하지만 정부가 개입할 이유도 자격도 명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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