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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술 더 먹이려는 생각

일상 잡담 2008.11.03 23:51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나의 처외조모, 그러니까 집사람의 외할머니께서는 내가 결혼 전 대학생이었을 때부터 내가 처가를 갈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밥상을 차리고 내 밥그릇에 밥을 넘치도록 담아주셨다.

집사람도 내가 입이 짧은 걸 아는지라 늘 미안해 하면서 "할머니 고만 좀 하세요"라고 말렸지만, 정말 터무니없을 만큼 계속 밥그릇을 채워주시는 통에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내가 할머니께 그만 좀 주시라고 말씀을 드릴 수는 없었기에 주시는 대로 받고 억지로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먹기는 했지만 처가에 갈 때마다 할머니께서 퍼주시는 밥은 늘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사실 할머니께서 덜어 주시는 밥숟가락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예의를 차리기는 했지만 할머니 세대의 밥 한 술 더 떠주는 예의문화, 즉 밥먹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절의 문화를, 밥먹는 것은 아무 걱정도 없는 우리 세대에게 강요하는 행동이 못마땅한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심정이었다.

이제 내 나이 40을 넘어 몇 달이 지나면 50이 더 가까운 나이가 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외조모께서 내게 밥그릇을 가득 채워주셨던 심정이 이제야 가슴 속 깊이 이해가 간다.

술 한 잔 노래 한 곡, 그게 밥 한 술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내가 권하는 술 한 잔, 내가 권하는 노래 한 곡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한 것임을 그들도 내 나이가 되서야 알 것임은, 인생의 순리일까.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이 애처로워 보이고 내 후대들이 더 강건하고 능력있기를 바라는 내 심정을 그들이 과연 알까.

아이들 키우는 것 못지 않게 후배들 키우는 것 또한 날이 갈수록 어려워짐을 느낀다.

덧) 하루가 지나 술이 깬 상태에서 이 글을 보니 너무 주제넘은 글을 쓴 것 같다.
     모두 다 제 생각과 형편이 있는 것을.. 나이가 들면 잔소리만 는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하신 '젊은이'들이 있다면, 그냥 주책이라고 넘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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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0 : Comments 14
  1. Favicon of https://www.i-rince.com rince 2008.11.04 00:31 신고 Modify/Delete Reply

    부모님은 3층에 계시고, 저희 부부는 1층에 있는데도...
    올라가기만 하면 배터지게 음식을 먹이고도 더 먹이고 싶어하시는 저희 부모님이 생각나네요... 그게 부모님의 사랑인가봅니다.

    • 필로스 2008.11.04 17:04 Modify/Delete

      린스님은 소문난 효자시잖아요^^

  2. Favicon of https://zombi.tistory.com 좀비 2008.11.04 00:53 신고 Modify/Delete Reply

    그래도 술은 자신의 몸도 생각해 가면서, 남에게 권하세요..
    다른 사람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로스님을 더 배려할지도 모릅니다. ^^

    • 필로스 2008.11.04 17:05 Modify/Delete

      네. 명심하겠습니다. 제 건강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말입니다. 주책을 부렸네요^^

  3. Favicon of http://minoci.net 민노씨 2008.11.04 02:50 Modify/Delete Reply

    가끔씩 술 한잔 하시고 글 쓰셔야겠습니다.
    애잔하달까..
    여운이 깊습니다...

    • 필로스 2008.11.04 17:07 Modify/Delete

      음주 포스팅이 잦은 사고를 부르더군요. 이번에는 그래도 사고급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4. Favicon of http://gamsa.net 양깡 2008.11.04 08:31 Modify/Delete Reply

    말씀하시는 데서, 사랑인 느껴집니다. :)

    • 필로스 2008.11.04 17:07 Modify/Delete

      술을 좀 그만 먹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5. Favicon of https://raytopia.tistory.com '레이' 2008.11.04 09:50 신고 Modify/Delete Reply

    주시는 거 안 받아 먹은 사람이 누구에욧~~!! ㅋㅋ

  6. Favicon of https://sophiako.tistory.com 초하(初夏) 2008.11.04 13:17 신고 Modify/Delete Reply

    느긋한 글귀들이, 인생의 연륜이 느껴지는 고민들이 마음을 잡아 끕니다....^^
    이따금씩 필로스님을 뵐 수 있어,
    지난 한 해, 저에게도 즐거움이었습니다.

    내일은 더 추워진대고, 비소식도 있네요. 건강 먼저 챙기시길 바랍니다~~

    • 필로스 2008.11.04 17:09 Modify/Delete

      술마시고 사무실로 들어오면 가끔 이런 사고를 칩니다^^
      초하님도 건강하십시오~

  7. Favicon of http://inthenet.tistory.com SuJae 2008.11.05 11:58 Modify/Delete Reply

    필로스님께 밥 한술 확! 얻어 먹어고 싶은데요.

    • 필로스 2008.11.05 13:50 Modify/Delete

      원격으로 밥같이 먹기 서비스 같은 게 있으면 좋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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